임해준
任海俊1865. 7. 30 ~ 1935. 4.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장운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장운식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865년 7월 30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남 금산군) 군북면(郡北面) 곡남리(谷南里)에서 태어났다.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장운식(張雲植) 의병부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 등으로 국권상실이 현실화되자, 전국에서 다시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충북 옥천(沃川)에서 장운식이 척왜(斥倭)를 기치로 의병을 일으키자 합류하였다. 1907년 (음)11월 20일 동료인 민한식(閔漢植)·이향운(李香雲)·신돌석(申乭石)·곽준희(郭俊熙)·김평근(金平根) 등과 함께 옥천군 이내면(伊內面) 기탄리(岐灘里)에 사는 이시근(李始根)과 지동(池洞)에 거주하는 이과부의 집에서 각각 3원과 2원을 군자금으로 모금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이내면 삼정리(三丁里)에 살던 최용호(崔龍浩)의 집에 들어가 총으로 위협한 뒤 군수품으로 베 5필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 말에는 원동에 거주하는 김병태로부터 3원 35전을 수합하였다. 1908년 (음)5월 20일경에는 민한식·이향운과 이내면 곽용재(郭龍載)의 집에서 80원을 징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음)7월 15일 민한식·이향운·곽준희·김평근 등과 더불어 금산군 북면 보강리(洑江里) 권주사의 집과 부북동(富北洞) 고승필(高承弼)의 집에서 각각 3원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이처럼 1909년 3월경까지 옥천과 금산 일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가 같은 해 3월 수색 중이던 영동경찰서 일제 경찰에게 민한식·신돌석·곽준희·이향운 등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5월 8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7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대심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1935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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