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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凞擇

凞擇

1845 ~ 1908.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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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凞擇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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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이평해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평해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는 알 수 없다. 일제 보고문서에 1908년 당시 64세로 기록된 것을 미루어 1845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에는 전라북도 용담군(龍潭郡) 이남면(伊南面) 오목리(五木里)에 거주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독자적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이평해(李平海) 의병부대에 합류해 항일투쟁을 펼치다가 사망하였다. 이평해는 서울 출신으로 당시 65~66세 가량의 노숙한 의병장으로 전북 부안군(扶安郡) 출신의 서기 변기석(邊基石), 포군십장(砲軍什長) 전관준(田寬俊) 등과 함께 산탄총·화승총으로 무장한 100여 명을 이끌고 활동하였다. 이평해 의병부대는 1907년 12월 태인군(泰仁郡) 읍내에 거주하는 공전영수원(公錢領收員) 은경택(殷景宅)을 처단하는 등, 태인군 일대에서 친일부역자를 처단하고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음)8월 15일 전북 무주(茂朱)에서 임진수(林晉守)와 함께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그러다가 이평해 의병부대에 합류한 이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그곳을 근거지로 삼고, 경남·전북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1908년 3월 5일 김제군 월산면(月山面) 반월리(半月里)에서 토포사(討捕使)라 칭하고 숙박하였다. 하지만 월산면 자위단장은 이들을 거동이 수상하다고 판단하고 오전 3시경 신고하였고, 급보를 받고 김제경찰서 일제 사복순사 2명이 출동하였다. 결국 김제경찰서 일제 순사에게 백영문(白永文)·정만석(程萬石)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일제 순사에게 호송되어 전주경찰서로 압송되다가 김제군 입석면(立石面) 소검산리(小劍山里)에 이르러 포승을 절단하고 탈출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결국 다시 붙잡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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