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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鎭坎

鄭鎭坎

1921. 7. 27 ~ 2008.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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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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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咸平)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함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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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921년 7월 27일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월야면(月也面) 월악리(月岳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동정진감(東鄭鎭坎)이다. 1940년 9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직공 또는 잡역부로 일하며 학업을 병행하였다. 1941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부속 오사카(大阪)중학교 이부(二部) 3학년에 편입하였다. 일본에서 고학 중 극심한 민족차별을 겪고 재일 한인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였고, ‘우리 민족의 자유와 행복은 오직 조국 독립과 민족 해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여기며 독립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태평양전쟁이 확대되어 1942년 5월 9일 일본 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징병제 실시를 발표하자, 이를 계기로 5월 중순 같은 학교 동급생인 윤병윤(尹炳允)·고방웅(高房雄)·이형휘(李炯徽)·김규장(金奎藏)·하백문(河白文)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게 되었다. ‘조선독립청년당(朝鮮獨立靑年黨)’이라는 명칭을 제안하였고, 조직명이 결정된 이후 독립운동 방안 수립, 민족의식 고취 등의 활동을 하였다. ‘조선독립청년당’ 회원들과 함께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서울에 운동 본부를 설치한다. 이어 각 지방에 잠입해 유력자와 청년,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동지를 모집하고 일본이 패전에 이르렀을 때 기회를 보아 독립을 완수한다”는 활동 방향을 정하였다. 또한 “한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피력하되 가급적 한국어를 사용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정신력을 수양한다”, “철학 또는 사회학을 연구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등 지식을 함양한다”, “언제나 진지한 태도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회합 내용은 발설하지 않는다”는 강령도 정하였다. 1942년 6월 하순에도 모임을 가지고 공부와 인격수양으로 지도자의 자질을 키워 독립운동에 나서자고 결의하였고, 동지 모집 및 개인 자질 연성을 당면과제로 정하였다. 이후에도 40여 차례 회합하였다. 민족의식 고취, 독립운동 방침 논의 등의 활동을 하던 중, 1943년 3월 2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1월 26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옥고를 겪던 중 광복을 맞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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