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응제
張應濟1925. 4. 2 ~ 2012. 3.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주오산학교 혈맹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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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925년 4월 2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정주읍(定州邑) 덕산동(德山洞)에서 자작농인 부친 장내진(張乃珍)과 모친 이내극(李乃克)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장강응제(長岡應濟)를 썼다. 1942년 혈맹단(血盟團)에 참여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5~36년경 정주의 기독교계 사립학교였던 신안소학교(新安小學校)에 입학하였다. 5학년 재학 당시 담임교사로 부임한 장준하(張俊河)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민족의식을 키워나갔다. 1942년 신안소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이주해 본정(本町)에 위치한 일본인 양복점에 거주하며 배달원으로 일하였다. 1942년 봄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 학생들이었던 선우진(鮮于塡)·지세붕(池世鵬)·고창정(高昌廷)·승병일(承炳逸)·조응택(趙應澤) 등이 모여 혈맹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혈맹단은 독립을 이룰 때까지 항일투쟁을 하기로 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과 접촉하여 청년 학생들을 망명시켜 광복군에 참여시킬 것 등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정주에 본부를 두고 서울과 각 도에 지부를 두기로 하였다. 이때 서울책임자로 혈맹단에 참여해 서울 일대 일본인들의 동향과 민심을 파악하고, 징병 상황 등에 대한 내용을 수집, 정리하여 우편으로 본부에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5년 봄에는 귀향해 집에서 머물다가 징집되어 인천욱공립국민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1945년 3월 단원 가운데 한명이 졸업하고 초등학교로 부임해 근무하다가, 회식 자리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일본인 교장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혈맹단의 실체가 드러나자, 다른 단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정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가, 다시 용암포경찰서로 이송되어 일제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신의주형무소로 옮겨져 미결수로 옥고를 겪다가 광복을 맞이하면서 같은 해 8월 17일 풀려났다. 1945년 11월 평양(平壤)에서 조만식(曺晩植)을 당수로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이 창당되자, 평안북도 도당에 다른 혈맹단원들과 함께 입당한 후, 도당부 경비대(道黨部 警備隊)에서 활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주인민위원회 적위대(赤衛隊)와 충돌이 발생해 체포령이 떨어지자, 1946년경 서울로 내려왔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12월에 입대해 육군 9사단 27연대 2대대에 배속되어, ‘철의 삼각지대’ 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8월에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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