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귀석
鄭貴錫1908. 3. 16 ~ 1952. 5.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성진회
- ·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
- · 쌍암보통학교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독립의식 고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908년 3월 16일 전라남도 광양군(光陽郡) 광양읍 인서리(仁西里)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일본식 성명 강요로 곡촌정웅(谷村貞雄), 목촌정웅(木村貞雄), 송본승태(松本昇泰)라는 창씨명을 썼다. 전남공립사범학교(全南公立師範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28년 3월 전남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전남 순천(順天)의 쌍암공립보통학교(현 승주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공립사범학교 재학 시절인 1928년 2월 11일경 전남 광주군(光州郡) 서방면(瑞坊面) 우암리(牛岩里)에 소재한 지용수(池龍洙)의 집에서 동지들과 회합을 가지고 성진회(醒進會)에 가입하였다. 이 자리에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서 활동하고 있던 강해석(姜海錫), 성진회 조직을 주도했던 최규창(崔圭昌)·김광용(金匡溶)·문승수(文升洙) 등이 참석하였다. 성진회는 일본 제국을 타파하여 한국을 독립시키고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목적에서 1926년 11월 조직된 비밀결사였다. 지용수의 집 회합에 참여한 인사들 가운데 고등보통학교와 농업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일선 현장에서 농민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범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교사가 되어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보급하고 독립의식을 고취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러한 결의를 실천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협의하는 활동을 하다가, 실천하기도 전에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365일 본형 산입)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1931년 6월 17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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