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春奉
春奉189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평산군 인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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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7)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인산면(麟山面) 건천리(乾川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94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4월 1일 평산군 인산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겪었다. 1919년 평산군의 만세운동은 천도교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었다. 서울의 천도교 중앙총부와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던 인산면 천도교 인사들이 만세 시위를 기획해 3월 7일 평산군의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헌병대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시위대 일부가 사망하고 부상을 입었다. 이에 분노한 군중이 지역 내 각처에서 3월 말부터 소규모 만세시위를 산발적으로 일으켰다. 이러한 소식을 탐문하고 3월 말 동료 신봉균(申鳳均)·김용운(金龍雲)·조중선(趙仲善) 등과 은밀히 모여 거사 계획을 논의하였다. 한포리(汗浦里)와 기린리(麒麟里)에 장이 서는 3월 31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3월 30일 각 마을 곳곳에 ‘대한국독립만세’라는 전단을 붙인 뒤 헌병주재소, 군청 게시판 및 군청 문 앞에 태극기 모형을 붙여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민족 독립의 의지를 드러냈다. 3월 31일 600여 명의 군중과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 주변 거리를 함께 행진하였다. 헌병대가 출동하여 총을 쏘며 해산을 강요하자 해산하였다. 4월 1일 다시 모여 400여 명이 넘는 시위대와 함께 기린주재소로 향하였다. 헌병대가 무차별 발포하며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고, 다시 상고한 결과 1919년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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