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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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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2. 4 ~ 1998.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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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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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하와이 여자청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8) 1919년 2월 4일 태어났으며, 하와이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재미 한인 2세 가운데 어학 능력이 우수하여 중학생 때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였다. 1934년 3월 2일 호항신교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조선청년대회에서, 「하와이 조선 청년의 장래」라는 연제로 각 교회를 대표한 7명의 청년이 영어로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였다. 이때 16세의 나이로 1등상을 받았다. 1935년 하와이 여자청년회 학생 대표로서 6월 29일부터 미국부인청년대회에 출석한 후 하와이로 돌아왔다. 1935년 10월 하와이 한인 사회의 합동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신양근·문덕만 등과 함께 임원을 맡았다. 주된 업무는 청년의 일치단결을 목적으로 각 교회 청년 단체의 대표자들이 모여 합동 운동의 방침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1942년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3일 동안 워싱턴 라파예트호텔에서 개최된 한인자유대회에 출석하였다. 한인자유대회에서는 이승만(李承晩)·서재필(徐載弼)·김용중(金龍中) 등의 지도자가 연설을 하였고, 청년 대표로서 연설하였다. 같은 해 12월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태평양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1943년 6월 『국민보』에 「한국의 청사진」을 발표하여, 일제가 패망 후 한국의 민주적 국가 건설을 위해 제언하였다. 워싱턴대학에서 수학 중 보스턴대학에서 수학한 배의환과 결혼하였다. 1943년 워싱턴에서 배의환과 함께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의 기관지 『독립』 신문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독립』을 발간한 데에는 “독립운동의 현 단계에 있어서 중요하고 힘 있는 무기 중의 하나를 언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직접 『독립』에 밝힌 신문사 창립의 목적은 “독립운동을 위하여 한 부분의 힘이 되고자 함은 물론 오직 민족본위 입장에서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려 하는 것”이었다. 1965년에 한국 고시조를 영어로 번역하여 『The Ever White Mountain : Korean Lylics in the Classical Sijo Form』을 출판하였다. 최초로 한국 시조를 영어로 번역 출판한 사례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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