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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문

林德文

188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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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임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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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연기(燕岐)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연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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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관련 사건

  • · 1919년 연기군 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7)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남면(南面) 양화리(陽化里, 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출신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다만,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34세이므로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31일 조의순(趙義淳)·김봉식(金鳳植)·임영복(林永福) 등과 함께 양화리·진의리(眞儀里)·월산리(月山里)의 연합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양화리·진의리·월산리에서는 주도자들이 처음부터 함께 논의하여 연합으로 제2차 횃불만세운동이 준비되었다. 3월 31일 조의순과 함께 양화리의 대표로서 진의리의 김봉식, 월산리의 임영복 등과 함께 같은 동리의 이덕민(李德敏)의 집에서 회합하여 횃불만세운동 계획을 협의하였다. 회의의 결과 당일 밤 주민들과 함께 아월산(雅月山)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결정하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우선 이덕민·조의순 등과 함께 양화리의 임덕화(林德化)를 추동하여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계획한 대로 아월산으로 올라가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주변에 어둠이 깔리자 횃불을 밝히고,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참 동안의 시위를 통해 사기가 오른 시위대를 지휘하여 진의리로 이동하였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임영철(林營喆)을 독려하여 진의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진의리 주민들의 참여로 규모가 확대된 시위대를 지휘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송담리(松潭里)로 행진하였다. 송담리는 연합횃불시위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지역이었으나. 이미 주민들이 독자적으로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이들과 합류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남면 각지의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한 내용이 인정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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