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定基
定基1898. 5. 14 ~ 1951. 8.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 ·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98년 5월 14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초전면(草田面) 월곡리(月谷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일(汝一)이고, 호는 백아(白啞), 이명은 이여일(李汝一), 이봉이(李鳳伊)이다. 조부는 파리장서운동에 서명한 면와(勉窩) 이덕후(李德厚), 외조부는 고령(高靈)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이며, 아버지는 이우원(李愚元)이다. 1919년 파리장서(巴里長書)운동이 전개되었을 때 이에 조력하였다. 파리장서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개최되고 있던 파리강화회의에 유림들이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청원문을 제출했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윤충하(尹忠夏)·김창숙(金昌淑) 등이 기획하였고, 영남 유림의 영수 곽종석(郭鍾錫), 호서 유림의 영수 김복한(金福漢) 등을 비롯한 유림계 인물 137명이 서명하였다. 파리장서운동에 서명 의사를 표명하였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과 한 집안 당 한 명의 서명 원칙에 따라 최종 서명자 137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최종 서명자에는 포함되진 않았으나 파리장서운동의 조력자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2일 서명자 중 한명인 송회근(宋晦根)이 체포되면서 파리장서운동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같은 해 4월 30일 불기소로 풀려났다. 이후 1925년 (음)1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한 김창숙(金昌淑)과 만났다. 당시 김창숙은 중국지역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며, 정의부(正義府) 위원 남형우(南亨祐), 대한독립당군정서(大韓獨立黨軍政署) 대표 배병현(裵炳鉉) 등과 회합하여 국내 군자금 모집과 의열투쟁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1925년 9월 귀국하여 대구(大邱)에서 장진홍(張鎭弘)·이원록(李源祿) 등과 암살단(暗殺團)을 결성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에 연루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7년 10월 8일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의 장진홍(張鎭弘)이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선물로 위장한 다이너마이트를 전달,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은행원·경찰관 등 5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일제 경찰은 1,600명을 동원하여 범인을 찾기 위해 수사하였다. 그 결과 1928년 1월 다른 동지 7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9년 12월 9일 대구지방법원 예심에서 면소를 받고 풀려났다. 2년에 걸친 오랜 조사 기간 동안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진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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