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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琮根

琮根

1895. 3. 17 ~ 1975.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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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琮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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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풍(開豊)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풍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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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유학생학우회
  • · 조선청년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2
  • · 8독립선언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5년 3월 17일 경기도 개풍군(開豊郡) 흥교면(興敎面, 현 개성시)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와 토요대학(東洋大學)에 재학하였으며,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5년 이후 일제가 재일 유학생들의 사상 동향을 감시하던 이른바 ‘요시찰(要視察)’ 대상에 포함되었다. 1912년 10월 조선유학생학우회(朝鮮留學生學友會)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에 참여하였다. 1917년 12월 27일 간다구(神田區) 진보쵸(神保町) 남명구락부(南明俱樂部)에서 개최한 학우회 송년회에서 서춘(徐椿) 등과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을 독려하는 발언을 하였다. 1918년 2월 조선유학생학우회 정기 총회에서 운동부장과 평의원에 선출되었다. 1919년 1월 6일 도쿄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조선유학생학우회 주최 웅변대회에서 서춘·김상덕(金尙德)·윤창석(尹昌錫) 등과 연사로 나와 “구체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웅변대회 후 유학생들은 해산하지 않고 독립운동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김도연(金度演)이 독립운동 실천방법을 일임할 수 있는 대표 선출을 제안하여, 서춘·김도연·윤창석·김상덕·최팔용(崔八鎔)·전영택(田榮澤)·백관수(白寬洙)·송계백(宋繼白)·최근우(崔謹愚) 등과 임시실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임시실행위원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이를 일본 각계와 각국 공사관에 송부하기로 독립운동의 방법을 결정했다. 이어서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선언서」·「결의문」·「민족대회 소집청원서」를 작성키로 했다. 1919년 2월 최팔용과 함께 미국에서 도쿄에 온 여운홍(呂運弘)을 만나 해외 동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 1919년 2월 8일 조선유학생학우회 총회가 도쿄 YMCA에서 개최되었다. 약 400명의 유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학우회 회장 백남규(白南奎)가 개회를 선언했고, 최팔용이 조선청년독립단 발족을 선언하였다. 이어서 백관수가 독립선언서를, 김도연이 「결의문」을 읽었다. 서춘이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는 순간 일제 경찰이 해산을 시도하였다. 일제 경찰과 학생들 간의 난투극이 벌어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연행되었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들과 함께 붙잡혔다.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경시청으로 이감 기소되었다. 1919년 6월 제2심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금고(禁錮) 7월을 받고 도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1920년 7월 김준연을 단장으로 한 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 하기 순회강연단의 국내 유세에 참여하였다. 1일 동래를 시작으로 부산·울산·경주·진주·밀양·마산·대구·공주·청주를 거쳐 17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18일 단성사(團成社) 강연에서는 종로경찰서장이 개입하여 강연이 중단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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