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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鉉昌

鉉昌

1865. 6. 2 ~ 1930.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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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鉉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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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星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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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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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5년 6월 2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월항면(月恒面) 안포동(安浦洞)에서 이화준(李華俊)과 광주 노씨(光州盧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산(京山)으로, 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의 후손이다. 자는 희서(姬瑞)이고 호는 취당(恥堂)이다.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와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이후 서당을 열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1905년 이승희(李承熙)가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주장하며 이에 동조한 관료들의 처단을 강력히 요구하는 「청주적신파늑약소(請誅賊臣罷勒約疏)」를 올릴 때 연명하면서 조약의 강제 체결을 반대하였다. 1919년 3월 유림들이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알리기 위해 작성한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서명자로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같은 집안이면서 함께 장복추의 문하에서 배웠던 이계원(李啓源)·이계준(李季埈)에게도 참여를 권유하며 서명하도록 하였다. 파리장서는 호서지역의 김복한(金福漢)과 영남지역의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 등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김창숙은 완성된 파리장서를 직접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중국 펑톈(奉天)·톈진(天津)을 거쳐, 그해 3월 27일 상하이(上海)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김규식(金奎植)이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이미 파리로 떠난 사실을 알고, 파리장서를 우편으로 발송해 제출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파리장서를 번역해 한문본 3,000부와 영문본 2,000부를 인쇄한 후, 각국 대표와 공사관·신문사 등으로 배포하고, 국내 각 향교에도 한문본을 우송하였다. 파리장서는 1919년 4월 2일 서명자 중 하나였던 송회근(宋晦根)이 성주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일제 경찰에게 붙잡힌 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파리장서에 참여한 서명자와 관련자 대부분이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다행히 이때 몸을 피해 일제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았지만, 궐석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후 1921년 9월 16일 추석을 맞아 집에 들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그해 9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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