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千澤
千澤1903. 3. 19 ~ 1985. 9.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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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7) 1903년 4월 16일((음) 3월 19일)에 경기도 광주군(廣州郡)에서 태어났다. 호는 덕암이다. 이명은 Emesto Lim과 Emesto Lim Yu이며, 한자가 다른 임천택(林天澤)을 쓰기도 하였다. 두 살이 되던 1905년 홀어머니와 멕시코로 이민가서, 1921년 3월 쿠바로 이주하였다. 1922년 7월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Matanzas) 서기로 선출되었고, 1924년 평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9월 8일 유카탄(Yucatan) 출생인 9살 연하의 김귀희와 혼인하여 5남 4녀를 두었다. 1925년부터 1927년 사이 마탄사스의 민성국어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1926년 8월부터 마탄사스지방회 임시서기, 1927년 총무, 서기 겸 실업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부터 국내와 교류하면서 쿠바로 보내온 서적·신문·잡지를 돌려 보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국내의 『별나라』·『별건곤』·『삼천리』 등 잡지 및 『조선일보』 등에 쿠바 동포의 소식을 알리기도 하였다. 1927년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의 통신사무를 맡았고, 1934년부터는 정식 통신원이 되어 7백 회 이상 통신을 게재하였다. 1931년부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교류하면서 쿠바 한인들의 소식을 전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활동도 수행하였다. 『백범일지』에서는 “멕시코에선 김기창과 이종오, 쿠바에서는 임천택 등 제씨가 임시정부를 후원하고”라고 언급하였다. 1929년 카르데나스(Cardenas)로 이주하여 1930~1931년 카르데나스 지방회장, 1932년 학무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 진성학교 교장으로 자녀들을 위한 민족교육에도 힘썼다. 1932년 1월 19일 마탄사스로 이주하여 1933년 마탄사스지방회 서기 겸 총무가 되었다. 민성국어학교 교장으로 3년간 재직하면서 1932년 청년학원을 창립하는 한편, 그해 3월 10일 이래 청년학원 원장 겸 교사로도 활동하였다. 청년학원은 야학으로 독서·동화구연·토론·강연회를 통해 민족혼과 애국심이 투철한 인재 양성이 목적이었다. 원장 겸 교사로 헌신하다가 신경쇠약증으로 휴원하였다. 1937~1939년 마탄사스지방회 총무를 역임하면서 청년부 강사로 국어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38년 7월 10일 대한여자애국단 지부가 마탄사스에서 설립되자, 로스앤젤레스의 대한인국민회 본부와 함께 대한여자애국단 마탄사스지부(단장 현미숙)를 조직해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광복군 후원금 모금 활동 등을 수행하였다. 1941년 12월 28일 쿠바의 대한인국민회 3개 지방대표회 11인이 재큐한족연합외교회를 결성하는 데 참석하였다. 1943년 4월에는 아바나(Havana) 등 3곳의 대한인국민회를 통합한 재큐한족단[在古韓族團] 창립에 앞장섰다. 재큐한족단은 임시정부 후원, 국민회 옹호, 재쿠바 동포 안녕보장, 한국독립 승인 선전공작, 독립후원금 모집 등을 표방하였다. 1943년 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고문, 1944년 재무, 1946년 재무 겸 총무, 1947년 총무로 집행위원장을 겸임하였다. 그리고 1948년부터 1953년까지 6년간 집행위원장 겸 서기로 활동하였다. 1952년 4월 1일부터 마탄사스와 카르데나스지방에서 국어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54년 『큐바한인 이민력사』를 태평양주보사에서 출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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