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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원

姜壽元

1916. 3. 5 ~ 200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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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수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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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동아연맹(도쿄)
  • · 우리들(도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6년 3월 5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아산면(雅山面) 상갑리(上甲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늘샘이다. 강항천(姜恒泉)이라고도 불렸다. 1939년 3월 일본에 건너가 1941년 12월 도쿄 소재의 센슈대학(專修大學)을 졸업하였다. 도쿄에서 생활하면서 1940년 11월 임병학(林炳學)·강영석(姜永錫) 등 한국인 유학생을 규합하여 동아연맹(東亞聯盟)에 가입하고, 김창옥(金昌沃)·박석우(朴錫祐) 등과 함께 독립운동 비밀결사 ‘우리들’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펼쳤다. 비밀결사 ‘우리들’에서는 주로 역사·경제·정치·철학 분야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지도 원리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하였다. 센슈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시모노세키(下關)로 옮겨가 제1징병보험주식회사에 근무하면서 김창옥·박석우 등과 연락을 취해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1943년 6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4년 10월 6일 야마구치(山口)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명목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히로시마(廣島)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전북 익산(益山)의 남성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운동 및 히로시마 피폭의 경험을 『망국민의 통한』, 『피폭 한국인 징용공의 증언과 고발』, 『한국인명사전』 등의 저술로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심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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