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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용

田太用

188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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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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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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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은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은하면(銀河面) 장곡리(長谷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전명규(田明圭)·전순삼(田順三) 등과 함께 1919년 4월 9일 홍성군 은하면 장곡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홍성군 은하면에서는 3월 21일 면사무소 소재지인 대천리(大川里)에서 최초의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후 4월 9일 장곡리에서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에 참여하였다.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전명규·전순삼 등의 동지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장곡리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4월 9일 밤 동지들과 함께 한국 독립의 필요성과 만세운동의 취지를 호소하였다. 그 취지에 공감하여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에 의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를 통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6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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