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봉
田學封1902. 8. 21 ~ 1979. 5.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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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902년 8월 21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광생리(光生里)에서 태어났다. 정산면의 만세운동은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을 중심으로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면사무소 소재지인 서정리(西亭里) 정산시장의 장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5일 오후 3시경부터 홍범섭 등은 정산시장에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즉시 해산을 명령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30여 명을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하였다. 시장에 나왔다가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일제 헌병의 폭압적인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주변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했으나, 시위대의 규모는 700여 명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연행자들을 대신하여 시위대를 이끈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의 지휘에 따라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헌병주재소로 달려갔다. 일제 헌병들에게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던 권흥규가 일제 헌병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면서 시위는 흩어졌다. 다음날인 4월 6일 권흥규의 시신 운구에 참여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대규모의 운구행렬이 형성되었고 선두에는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이 서고, 많은 만장(輓丈)이 줄을 이었다. 운구가 지나가는 연로 각 마을에서도 상여를 대고 또 곳곳에서 노제를 올리고 통곡하며 속속 운구행렬에 동참하였다. 지곡리(池谷里)를 경유할 즈음 ‘독립만세’의 절규가 터져 나오면서 권흥규의 운구는 그 자체로 만세시위로 전환되었다. 일제는 운구와 동시에 진행된 만세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정산의 헌병파견대 외에 청양군 및 공주(公州)의 헌병들까지 정산으로 파견하였다. 공주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들은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여 권흥규의 조카딸 최윤안(崔胤安)과 상여꾼 김국삼(金國三)·유행길(柳行吉) 등 또다시 여러 사람이 사망하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일제 헌병에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22일의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한 점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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