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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원

丁大元

1862. 4. 8 ~ 1929.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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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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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完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황화면
  • · 여산읍 독립선언서 배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62년 4월 8일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화산면(華山面) 운산리(雲山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天道敎) 신자로 활동하였으며, 이때 익산군(益山郡) 황화면(皇華面) 황화정리(皇華亭里, 현 충남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천도교 측의 주도로 계획되었던 익산군 만세시위 참가자 모집을 독려하기 위해 지역의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당시 전라북도 익산군 천도교 교구에서는 천도교 임원과 교인들이 만세시위를 의논하였다. 이때 다른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회의의 결과에 따라 황화면, 팔봉면(八峰面) 지역에서 만세시위 참가자를 동원할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2일 천도교 신도인 박영진(朴永鎭)과 함께 황화면 오덕인(吳德仁)의 집에서 천도교 구장의 의탁을 받은 김병호(金秉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교부받았다. 이날 박영진과 함께 독립선언서의 배포에 나서 황화면 일대에 1장과 여산읍(礪山邑) 일대에 6장을 배포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변경되지 않아 징역 8월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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