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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도

鄭萬道

1898. 4. 6 ~ 197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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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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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高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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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고령 우곡면(4.6
  • · 4.8)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8년 4월 6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대곡동(大谷洞, 현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한자를 달리한 정만도(鄭晩道)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4월 6일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날 야정동(野亭洞)에 사는 박재필(朴在弼)은 도진동의 박영화(朴英華)를 찾아간 후 만세운동을 함께 계획하였다. 밤 6시경 박재필이 나팔을 불어 주민들을 모은 후 박영화가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독립운동의 뜻과 필요성을 호소하였다. 이에 만세시위의 필요성에 공감하여 동참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국내 각 지방에서 일어나는 만세시위에 고령에서도 호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만세시위에 참여를 결의한 같은 마을 주민 50여 명과 함께 모여 본격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주민들과 함께 대열을 지어 마을을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밤 11시경에는 우곡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면사무소 마당으로 진출한 시위대와 함께 만세운동을 이어 나갔다. 밤 12시경이 되어 면사무소장의 시위 중단과 해산 요청도 있고, 매우 늦은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만세시위를 해산하여 마을로 돌아갔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보안법 및 조선형사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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