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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丁奉洙

1887. 12. 28 ~ 193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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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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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長水)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장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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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장수군 산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7년 12월 28일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산서면(山西面) 사계리(社溪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9일 산서면 동화리(桐花里)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만세시위는 유생(儒生) 박정주(朴政柱)에 의해 주도되었다. 박정주는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동화리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오후 3시 동화리 장터에 도착한 박정주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장대 2개에 묶어 건네주자, 이를 정호현(丁豪鉉)과 받아 들고 장터를 돌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모습을 지켜본 김형택(金炯澤)·이화백(李化伯)·이길선(李吉善)·이상욱(李相煜) 등의 마을 주민들도 시위대에 합류하여 약 200명의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동화리 장터를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태극기를 꽂은 장대를 압수당하고, 박정주·정호현과 함께 장수헌병분견소 동화출장소에 구금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약 200명의 시위대는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이들을 즉시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주재소 안으로 진입하였다. 오후 5시경 시위대의 요구가 관철되어 박정주 등과 함께 헌병주재소에서 풀려났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산서면사무소 앞으로 행진하였고, 이곳에서 2~3회 ‘독립만세’를 연달아 부른 후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하지만 만세시위가 종료 직후, 주도자로 지목되어 재차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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