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석
鄭富碩1885. 7. 15 ~ 1942. 2.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의성군 안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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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5년 7월 15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대사리(大司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5일부터 18일까지 의성군 안평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의성군 안평면 대사동(大司洞)교회에서 주일 낮 예배를 위해 신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북술(李北述)·김옥돈(金玉頓)·이종출(李鍾出)·이양준(李良俊) 등은 전국 각지에서 거행되고 있는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 고장에서도 이에 호응해 만세시위를 준비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의견에 적극 찬성하고 마을 주민 이맹준(李孟俊)·이수원(李守元)·이만준(李萬俊)·배세태(裵世泰)·정갑이(鄭甲伊)·이흔이(李欣伊) 등과 함께 동참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일 오후 7시 거사 소식을 듣고 모인 100여 명의 대사동 주민들과 함께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3월 16일 오후 8시 무렵에는 5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사동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후, 기도동을 거쳐 창길동까지 진출해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의 대의를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7일 오후 8시 무렵 대사동 우리곡(尤利谷)에 운집한 150여 명의 시위대 앞에서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면서 행진을 시작하였다. 만세시위 도중 합세한 25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안평면(安平面) 마전동(馬轉洞)·도동(道洞)·괴산동(槐山洞)을 거쳐 창길동의 안평경찰관주재소까지 나아가 ‘독립만세’를 불렀다. 주재소에서 만세시위를 마친 시위대가 화령동(花寧洞)까지 진출하자, 일제는 의성경찰서 소속 경찰들을 출동시켜 시위대 일부를 강제로 체포하였다. 3월 18일 밤에는 전날의 시위대 체포에 격분하여 전날보다 많은 300여 명의 시위대가 대사동 우리곡으로 집결하였다. 시위대는 안평경찰관주재소를 직접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일제 경찰을 제압한 후 그들에게도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전날과 같이 안평면 마전동·기도동·창길동·박곡동(朴谷洞)·괴산동 일대를 행진하면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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