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복
鄭相福1899. 6. 17 ~ 1946. 11.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연기군 전의면 만세운동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관련 사건
- · 1919년 연기군 전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4) 1899년 6월 17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全義面) 신정리(新井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정완(鄭正完)이고, 한자를 달리 한 정상복(鄭相卜)을 쓰기도 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3일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邑內里) 전의장터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의면 읍내리 전의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이수욱(李秀郁)에 의해 주도되었다. 고종의 국장을 보기 위해 상경한 이수욱은 서울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을 보고 고향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귀향해 추경춘(秋敬春)을 만나 동의를 구하고 마을 사람들과 협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서 3월 7일 밤 박성교(朴聖敎)의 집에서 추득천(秋得天)·윤자훈(尹滋勳)·윤자벽(尹滋壁)·윤상원(尹相元)·윤상억(尹相億)·김재주(金在周)와 만나 만세시위 취지를 알리며, 3월 13일 읍내리 장터 장날을 이용해 거사를 실행하기로 협의하였다. 그리고 3월 8일 밤 김병옥의 집에서 정원필(鄭元弼)·이장희(李章熙)·이광희(李光熙) 등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3월 13일 오전 9시경 이수욱은 미리 만세시위에 사용하기 위해 자택에서 제작한 태극기 150장을 가지고 장터로 가는 통로인 갈정리(葛井里) 언덕으로 이동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였다. 이때 갈정리 고개에서 이수욱·추경춘으로부터 당일 오후 전의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면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이들의 호소에 공감하며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약속하고, 태극기를 받아서 장터로 이동하였다. 12시 40분경 이수욱이 조선 독립에 대해 연설한 뒤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수양(李秀陽)·이규영(李奎永)·이상건(李相健) 등 시장에 나온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옷 속에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면서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고, 이수욱 등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와 함께 읍내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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