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언
鄭聖彦1892. 7. 7 ~ 1952. 2.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부산 범어사 학생독립만세운동(3.17~1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92년 7월 7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언양면(彦陽面) 평리(平里)에서 태어났다. 법명(法名)은 학명이다. 범어사(梵魚寺)에서 운영한 명정학교(明正學校)·지방학림(地方學林)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4월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경험한 범어사 대표 김법린(金法麟)·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김상기(金相琦)·김한기(金漢琦) 등이 범어사로 돌아왔다. 김법린 등은 범어사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3월 17일 범어사에서 운영하는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졸업생 송별회를 앞두고 30~40여 명의 학생들로부터 만세시위에 참여하겠다는 결의를 받아냈다. 3월 17일 저녁 졸업생 송별회에서 김영규는 축사를 마친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송별회에 참석한 학생들과 범어사 승려 등 관계자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선리(仙里) 뒷산과 동래 향교(鄕校) 뒷산을 넘어 동래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였다. 이때 지방학림 4학년 학생으로 만세운동의 취지에 호응해서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3월 18일 새벽 1시 무렵 시위대와 함께 동래읍 복천동(福泉洞)에 있는 불교포교당에 도착한 후 시장에서 사온 곶감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였다. 이때 일제 군경이 습격하여 시위 주도자들을 체포하고 나머지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3월 18일 밤 이근우(李根雨)·김해관(金海管)·김재호(金在浩)·박재삼(朴在森)·신종기(申鍾驥)·윤상은(尹相殷)·박영환(朴永煥) 등과 함께 동래읍 서문(西門)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동래시장을 거쳐서 남문(南門)까지 행진하고 해산하였다. 3월 19일 윤상은·허용호·이영우(李永雨)·황학동(黃鶴東) 등이 동래시장에서 군중을 향해서 독립사상을 담은 격문을 배부하였다. 당일 오후 5시 무렵 학생 시위대 일부는 동래경찰서로 진출을 시도하였으며, 또 다른 학생 시위대는 오후 6시 무렵 동래면 시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시위대의 일원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범어사의 재정 등을 담당하는 승려가 되었으며, 1935년부터 명정야학교에서 학생들을 훈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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