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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정

丁淳政

1890. 9. 21 ~ 1961.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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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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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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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9월 21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현 무안읍) 성내리(城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전남 무안군 외읍면에서는 지역 유지였던 정순홍(丁淳紅)과 김순기(金順淇)가 일대의 뜻을 함께하는 사람 10여 명을 3월 19일 밤 외읍면에 위치한 김순기의 집으로 불러 모으면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김순기 등은 국내외 정세에 대해 토론하고, 무안 일대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여 독립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였다. 이에 다음날인 3월 20일 외읍면 장날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즉시 준비에 돌입하였다. 밤새 김순기의 집에서 종이를 이용해 태극기 수십 장을 제작하고, 친일 세력의 반성과 민중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경고문 수십 장을 만들었다. 이어 3월 20일 새벽부터 무안 읍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경고문을 부착하여, 사람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하였다. 1919년 3월 20일 오전 10시 만세시위 주도인물들은 외읍면 남산(南山)에 모여 독립선언을 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만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하였다. 시내로 내려온 시위대는 무안보통학교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경찰관주재소에서 온 경찰들이 나와 있었다. 경찰과 대치하면서도 줄곧 사람들에게 만세운동의 대의를 전파하였다. 다시 시가를 행진하면서, 만세시위 참가자 수가 500여 명에 달하였다. 시위대의 수가 증가하면서 일제 경찰들은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에 목포(木浦)에서부터 병력 지원을 나와 시위대와 다시금 대치하였다. 때때로 충돌과 언쟁이 벌어졌으나 큰 상황까지 발생하지는 않았다. 오후 10시 30분을 기하여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들이 주도인물 검거에 나서면서 57명을 붙잡았는데, 이때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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