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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조

鄭順祚

1885. 9. 8 ~ 196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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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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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南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남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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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남해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5년 9월 8일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설천면(雪川面) 문항리(文巷里)에서 태어났다. 가족관계나 학업 및 직업 등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소식은 곧 경남 남해군에도 전파되었다. 남해군 만세운동은 3월 20일 남해 읍내 시위를 시작으로 고현면(古縣面)·설천면(雪川面) 등에서 5차례 발생하였다. 그리고 인근 하동군(河東郡)의 만세시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특징이 있다. 3월 20일 남해 읍내 만세 시위는 3월 18일 하동군 만세 시위의 주도자들이 들어와서 직접 주도하였다. 설천면에서 4월 3일 시작되어 4일까지 이어진 남해군 읍내 만세 시위도 하동군의 시위와 연결되어 있었다. 설천면 문의리(文義里)에 사는 이예모(李禮模)는 하동에 가서 대한독립선언서를 받아온 이후, 평소 뜻을 함께하던 인사들을 이예모의 집으로 초대하여 보여주면서 거사를 제안하였다. 정학순(鄭學淳)·정몽호(鄭夢虎)·윤주순(尹柱舜) 등이 동의하자, 집에서 만세 시위 준비에 대한 내용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태극기 제작과 독립선언서 등사 등을 함께 하였고, 군중 동원을 위한 각 동리별 연락 담당의 역할도 분담하였다. 4월 3일 오후 3시경부터 설천면 남양리(南陽里)에서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독립선언식이 열리자 이예모가 군중들 앞에서 하동에서 가져온 대한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이때 그 옆에서 큰 태극기를 들었다. 독립선언식이 끝난 후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해읍으로 이동할 때 선두에서 서서 장대에 높이 단 큰 태극기를 들고 시위대를 이끌었다.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남해읍 읍내로 향하던 중 고현면(古縣面)에 이르렀을 때, 이곳 면장인 김치관(金致寬)이 읍내 경찰주재소에 만세 시위가 일어났고, 읍내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 밝혀졌다. 일단 읍내 진출을 보류하고 이튿날인 4월 4일 남해 읍내 시장 장날을 이용하여 보다 큰 규모의 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정하고 해산하였다. 4월 4일 아침 정학순·윤주순 등과 함께 남해읍 읍내 시장에 도착하여 장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2시 경부터 다시 시작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장날 시장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따라 불렀다. 이때 장대에 높이 단 큰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대를 지휘하였다. 먼저 경찰관주재소로 이동하여 만세를 부르다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물품과 집기 및 유리창을 파손하고 경찰들을 둘러싸고 만세를 부르도록 강요하였다. 이어서 시위대를 이끌고 군청에 들어가서는 군수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하였다. 식민지 수탈의 상징인 금융조합 사무실에 들어가서는 관련 서류를 파기하고 직원들을 읍내 시장으로 데리고 와서 만세를 부르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해군 읍내 시장에서 대규모 만세 시위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진압을 위해 사천(泗川)경찰서의 지원 병력이 도착하면서 양상이 급변하였다. 일제 경찰들은 총검을 휘두르며 폭력적인 진압에 나섰고, 결국 시위대는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위대의 해산에 성공한 일제 경찰들은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작전에 돌입하였다. 윤주순·정학순 등 20여 명과 함께 시위주도자로 붙잡혔고, 고문을 동반한 혹독한 조사를 받은 후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시위 주도자 중 가장 중형인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9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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