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仁鐵
丁仁鐵1901. 2. 9 ~ 1975. 12.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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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1년 2월 9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현 무안읍) 성남리(城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정병선(鄭丙瑄)이다. 1919년 3월 20일 무안군 외읍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무안군 외읍면의 만세운동은 3월 19일, 지역 유지인 정순홍(丁淳紅)·김순기(金順淇)가 뜻이 맞는 동료 10명을 불러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정순홍 등은 현재 각 지역에서 독립 만세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데 외읍면에서만 이를 행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보고, 동지들과 함께 다음날인 3월 20일, 외읍면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태극기를 만들고, 친일 분자들의 반성과 민중의 궐기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경고문 수십 매를 작성하였다. 3월 20일 새벽, 외읍면 각지에 경고문을 붙인 후, 오전 11시 약속 장소인 외읍면 남쪽 산기슭에 모였다. 이후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소재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때 ‘독립 만세’ 소리를 듣고는 기뻐하며 합류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무안보통학교로 행진하였는데, 이곳에서 일제 경찰들과 대치하여 독립의 정당성을 소리 높여 선언하였다. 이어 무안면 면소재지를 행진하였는데 그 수가 500명에 이르렀다. 이후 목포(木浦) 등지에서 일제 경찰의 증원 병력이 도착하였으나, 시위가 정연하고 기세가 높으므로 함부로 해산을 시도하지 못하였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오후 10시경까지 만세를 부르다 해산하였다. 다음날부터 이어진 일제 경찰들의 주도자 검속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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