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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一鳳

鄭一鳳

1886. 1.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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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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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부(古阜)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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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86년 1월 14일 전라북도 고부군(古阜郡)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지문리(芝文里)에 거주하였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원곡면에서는 3월 말경부터 각 리(里) 단위로 주민들에 의해 산발적인 시위가 일어나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4월 1일 오전부터 면민들의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저녁 8시경 원곡면사무소 앞에 나가 면민 1천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원곡면의 만세시위 주도자인 이유석(李裕奭)·이근수(李根洙)·이덕순(李德順)·이희룡(李熙龍)·이양섭(李陽燮)·최은식(崔殷植) 등이 원곡면장 남길우(南吉祐)를 앞세워 성은고개(현 만세고개)를 넘어 주재소와 우편소를 파괴할 목적으로 양성으로 이동하자 원곡면민 1천여 명으로 구성된 시위대 행렬을 따라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이날 양성면 동항리에 소재한 양성경찰관주재소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려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세하여 양성경찰관주재소, 양성우편소, 양성면사무소를 파괴하고 방화하였다. 또한 일본인이 경영하는 상점과 고리대금업자의 가옥을 파괴하였다. 이때 전면에 나서 경찰관주재소 등에 투석하는 등 적극적으로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돌아와 시위대와 함께 재차 원곡면사무소를 파괴·방화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4월 3일부터 만세운동 참여자들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면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안성읍내의 안성공회당에 구금되었다. 안성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받았고, 이른바 내란죄의 혐의로 고등법원의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은 ‘만세운동은 소요죄를 구성할 수는 있어도 내란죄를 구성할 수는 없다’라고 판결하고, 경성지방법원을 관할법원으로 지정하여 돌려보냈다. 이에 대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이 ‘본건 공소를 수리하지 않음’을 선언함에 따라 실제 재판은 만세시위로부터 거의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를 이유로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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