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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萬

鍾萬

1892. 9. 12 ~ 1960.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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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鍾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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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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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노동대회
  • · 조선민단
  • · 평양결사단 청주지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9월 12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오창면(梧倉面) 도암리(桃岩里)에서 태어났다. 조선노동대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조선민단(朝鮮民團)을 조직하였으며, 비밀결사 평양결사단(平壤決死團)을 결성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스승 김제환(金濟煥)과 함께 불납세(不納稅)·불입적(不入籍)·불응역(不應役) 운동을 펴다가 1913년 일제경찰에 붙잡혔고, 김선홍(金善弘)·신태영(申泰永) 등과 함께 청원군에서 성산대강회(聖山大講會)를 열고 일제에 항거하여 거의할 것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1920년 2월 16일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일본에서 직공으로 노동을 하다가 돌아온 김영만(金英萬)의 주도 아래 서울에서 조직된 조선노동대회의 발기인으로 김광제(金光濟)·문탁(文鐸)·박무병(朴武柄)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조선노동대회는 산업을 장려하고 환란을 서로 구제하며 인권의 평등과 세계평화를 목적으로 삼았다. 1920년 5월 20일 종로청년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이후 전국적으로 지부를 설치하고 지방의 기존 노동단체의 규합에 힘써 한때 회원이 8천여 명에 달하였다. 1920년 5월에는 김영만·홍갑표(洪甲杓)·박무병 등 89인과 함께 물산장려·상부상조·인권평등에 의한 세계평화의 확립을 취지로 하는 조선민단을 조직하고 간사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7월 17일 경성중앙기독교회관에서 조선민단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박무병과 임종연에게 김영만과 함께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여 노동대회 간사 박무병이 “때가 왔다”는 연설을 하고, 한일은행원 임종연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며 수백여 명의 청중에게 항일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이 일로 조선민단은 7월 30일에 종로경찰서로부터 정치적 불온단체라는 명목으로 해산명령을 당하였고,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나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1920년 9월경 자택에서 신흥구(申興求) 등과 함께 비밀리에 모여 국내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송부할 것을 계획하였다. 같은 해 12월 말 신흥구에게 여비 10원을 주고 서울에 보내어 권총 매수 여부를 탐지하도록 하고, 지인이었던 신형식(申亨植)과 김상열(金相烈)에게 해당 사항을 상의하여 권총을 매수할 금전을 지불하라고 하였다. 또한 독립운동 단원들을 모집하기 위해 유영창(柳永昌)·한병호(韓秉浩) 등을 동지로 포섭하여 비밀결사 평양결사단 청주지부(淸州支部)를 조직하였고, 충북 일대를 중심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펴던 중 조직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1921년 1월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3월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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