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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昌器

昌器

192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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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昌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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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지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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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경성부(京城府) 효자정(孝子町, 현 서울시 종로구 효자동)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45년 당시 나이가 23세이므로 1923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에는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노해면(蘆海面) 창동리(倉洞里)에 거주하였다. 부친 이재호(李載浩)는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 참여했다가 유형(流刑)을 받았고, 형 이세기(李世器)는 경북중학교 3학년 재학중에 광주학생운동과 관련된 일로 검속되었으며, 동생 이환기(李煥器)도 학도지원병 제도를 반대하는 격문을 부착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1년 12월 경성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1942년 3월부터 1943년 10월까지 강원도 오대산(五臺山)·금강산(金剛山)의 사찰에서 승려로 생활하였다. 1944년 1월부터는 사립 광신공업학교(光新工業學校)에서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43년 11월 상순경 동창생 송원무(松原茂)로부터 1944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차 행정관 견습 양성을 개시한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중국 충칭(重慶)으로 이동하여 임시정부의 행정관 견습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의하고, 실행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붙잡혔다. 1945년 7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70일 본형 산입)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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