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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喆榮

喆榮

1867. 3. 17 ~ 1919.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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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喆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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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公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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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치는 충청남도 공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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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7년 3월 17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계룡면(鷄龍面) 상왕리(上旺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는 성암(醒菴)이며 아버지는 이홍제(李弘濟), 어머니는 상산 박씨(商山 朴氏)이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부여(扶餘)에서 서당 훈도로 있었다. 1904년 일본인들이 철도를 부설하려고 공주에 있는 선영(先塋)을 침범하자, 유림 명의의 진정서를 작성하여 관계자를 찾아가 항의하며 선영을 침범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이에 비분강개하여 일제의 정책에 대해서 거부할 것을 촉구하는 창의문(倡義文)을 지어 배포하였다. 1909년 일제가 주도하여 호적을 만드는 일을 진행하려 하자, 입적을 거부하였다. 또한 개항 이후로 지속되고 있는 일제의 침략 과정을 열거하며 일제의 간상을 낱낱이 지적한 장서를 작성하여 부여주재소를 통해 일본 정부에 보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홍산경찰서에 이송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일제 경찰들은 갖은 협박과 회유로 입적할 것을 강요하였지만, 목숨을 내놓더라도 일본 백성은 되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거부하였다. 이와 같은 일제의 정책에 저항하는 일들로 인해 수차례 일제 경찰에 잡혀가 취조받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일제의 침략행위를 낱낱이 꾸짖었다. 이러한 저항은 19번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70여 일 동안 구금되기도 하였다. 투옥된 상황에서도 의연한 선비의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애국사상과 저항정신을 고취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성암집(醒菴集)』과 『내범요람(內範要覽)』, 옥중 일기인 『부풍일기(扶風日記)』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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