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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숙

張鳳塾

1920. 1. 25 ~ 200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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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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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蔚珍)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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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창유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43년 창유계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0년 1월 25일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울진면(蔚珍面) 읍내리(邑內里)에서 아버지 장사국(張士國)과 어머니 이순남(李順南)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옥산봉숙(玉山鳳塾)을 썼다. 동생 장영인(張永仁)은 1943년 12월 당시 창유계(暢幽契)에서 활동하였다. 중농(中農)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 집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부산 공립초량학교를 다녔으며, 초량공립소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의 사립중동학교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광성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학하였다. 1937년 12월 광성중학교를 중퇴하고 경성사립공과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1942년 가을 울진상공주식회사(蔚珍商工株式會社)를 설립하였다. 1941년 11월 경북 울진에서 조직된 창유계(暢幽契)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 부산 초량상업실수학교에 재학 중인 동향 출신 이재선(李在璇)과 함께 민족주의 사상을 배우고 민족의식을 키우며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였다. 그해 12월부터 1943년 2월까지 울진 읍내에서 창유계의 계원인 이재선, 아우 장영인 등과 함께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김일성(金日成)이 국내에 조선독립군을 거느리고 들어오면 이에 호응하여 총을 잡고 봉기하자”라고 하면서 독립운동에 동참할 방법을 논의하였다. 또한 부산에서도 동지들에게 “만주 독립군과 함께 조선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자” 혹은 “일본이 미영(美英)과 개전하고 있으므로 조선은 독립이 된다”라는 등의 발언을 함으로써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43년 3월 19일 창유계 사건이 발생하였고 관련자들이 대거 검거되었다. 창유계는 운동 방침에 따라 남원수(南源壽)와 장세전(張世銓)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하였는데, 장세전이 출발 전날인 1943년 3월 19일 일제에 발각되어 붙잡히고 남원수가 만주에서 붙잡혔다. 이때 계원 102명이 잡혀 41명이 구속되었는데, 12월 11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7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던 중 광복을 맞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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