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인
張永仁1924. 11. 13 ~ 2017. 1.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창유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1943년 창유계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924년 11월 13일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울진면(蔚珍面) 읍내리(邑內里)에서 아버지 장사국(張士國)과 어머니 이순남(李順南)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옥산영인(玉山永仁)을 썼다. 부산으로 유학하여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형 장봉숙(張鳳塾)과 함께 창유계(暢幽契)에서 활동하였다. 1941년 11월 창유계에 가입하였다. 1942년 12월 울진 읍내에 있는 형 장봉숙이 설립하여 경영하고 있던 울진상공주식회사(蔚珍商工株式會社)에서 이재선(李在璇) 등과 만나 “김일성(金日成)은 만주에 잠입하여 조선 독립을 위해 활약 중인데 만약 조선독립군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들어오면 이에 호응하여 총을 잡고 봉기하자”라고 하였으며, “우리들은 조선 독립의 적통으로서 일어날 각오이다”라고 뜻을 함께 하였다. 1943년 1월 하순경 울진상공주식회사 내에서 이재선 등과 만나 “김일성은 일본의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 들어가 비적(匪賊)을 규합하여 조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독립군을 일으킬 경우 이에 참가하자”라고 하니, “총을 잡고 독립군에 참가하겠다”라는 뜻을 개진하여 자주독립 의지를 더욱 굳게 하였다. 1943년 2월 경 강원도 울진군 근남면(近南面) 수곡리(水谷里)에서 이재선 등과 만나 “우리 조선인은 우수한 민족이므로 일치단결하여 조선 독립운동에 매진할 때”라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1943년 3월 19일 이른바 창유계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창유계는 운동 방침에 따라 남원수(南源壽)와 장세전(張世銓)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하였는데, 장세전이 출발 전날인 1943년 3월 19일 일제에 발각되어 붙잡히고, 남원수까지 만주에서 붙잡혔다. 이때 계원 102명이 잡혀 41명이 구속되었는데, 1943년 12월 11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7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6월, 장기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옥중에서 광복을 맞이하여 풀려났다. 광복 후 교직에 종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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