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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훈

張致勳

1893. 1.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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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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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성(開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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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6) 1893년 1월 15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송도면(松都面) 지정(池町)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창씨개명 강요로 산현치훈(山縣致勳)라는 창씨명을 사용하였다. 활동 당시 서울 남대문통 4정목에 거주하며 연초소매상(煙草小賣商)을 하고 있었다. 1920년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낼 애국금(愛國金) 모금 운동을 펼치다 붙잡혔다. 임시정부는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위해서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국외에 위치하여 주요 재정 기반인 국내 한국인들로부터 직접적 재정 확보가 어려운 상태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구세(人口稅)·애국금·공채발행·임시소득세 등의 방법을 고안하였다. 이 중 애국금은 인구세와 함께 임시정부 초기 주요 재원이었는데, 국무위원 조완구(趙琬九)가 1919년 5월 12일 임시의정원에서 재원 방침으로 보고한 이후 실시되었다. 애국금 모집을 위해 임시정부 재무총장(財務總長) 명의의 신표(信標)를 가진 애국금수합위원(愛國金收合委員)들이 국내 각지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1919년 8월 29일 서울에서 경기도 애국금수합위원 나기호(羅基瑚)를 만났다. 나기호는 애국금수합위원 신표 1장과 조선독립희생회부원증(朝鮮獨立犧牲會部員證) 7장을 건네주며 임시정부를 위한 자금 모집을 부탁하였다. 애국금수합위원회 신표는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의 명의로 발행된 것으로, 임시정부 활동에 필요한 외교 군사비 징모(徵募)를 위해 나기호를 경기도 애국금수합위원으로 파송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활동에 동의하여 참여키로 하고, 8월 29일 나기호와 함께 서울을 떠나 9월 1일 전라남도 목포(木浦)에 도착하였다. 나기호는 제주도로 가서 활동하기로 하여 헤어지고, 홀로 9월 2일 전남 강진군 강진면에 도착한 뒤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강진면 남성리(南城里) 교회에서 조수로 일하던 최복삼(崔福三)에게, 서성리(西城里)에서 김안식(金安植)에게 위 신표와 부원증을 보여주면서 자금을 모금하였다. 다음날인 3일에는 서산리(瑞山里) 교회에서 김형태(金亨泰)·한치순(韓致順)에게 독립운동자금 기부를 권유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3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고, 같은 해 4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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