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진
全大鎭1895. 6. 15 ~ 1963. 5.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조선민족대동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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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5년 6월 15일 서울 효제동(孝悌洞)에서 태어났다.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YMCA)가 주관하는 노동학회(勞動學會) 교육과정을 이수하였다. 양말직공으로 일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그해 6월에 불기소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출옥 후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가입하여 제2회 만세시위 계획에 참가하였다.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결성한 조선민족대동단은 조선 독립을 위하여 먼저 민족 대단결을 목표로 민족사회의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망라한 조직을 구상해 갔다. 같은 해 10월 총재 김가진(金嘉鎭) 등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이와 함께 의친왕(義親王)의 상하이 망명을 계획하는 한편 1919년 11월 27일을 기해 만세운동 때와 같은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일제 경찰의 검거망을 피한 나창헌(羅昌憲)·안교일(安敎一) 등 조선민족대동단 인사들은 당초 계획대로 선언서와 만세시위에 필요한 격문을 인쇄하고 배포하였다. 이때 정희종으로부터 200여 통의 선언서 및 격문을 받아 박용주(朴龍柱)에게 일부 건네주고, 11월 26일 밤 오후 9시경 종로 5가에서 동대문 부근까지 선언서와 격문을 배포하였다. 그러나 거사 당일 만세시위를 위해 계획된 시위장소로 갔으나, 약속에 차질이 생겨 예정대로 만세시위를 벌이지 못하였다. 의친왕 상하이 망명이 발각되는 상황에서 대동단 인사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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