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록
丁繼祿1862 ~ 미상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덕천지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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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성양면(城陽面) 금성리(金城里) 출신이다. 1921년 재판 당시 나이가 60세인 것으로 보아 1862년 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계록(丁繼錄·丁繼綠)을 썼다. 덕천 지역의 한학자로 1920년 9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덕천지단(德川支團)에 가입한 후, 부지단장(副支團長)으로 활동하면서 군자금 모집에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며 항일투쟁의 터전을 마련했던 의병부대들은 독립운동의 본격화를 위해 통합된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움직였다. 그 결과 같은 해 4월 15일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농무계(農務契)·향약계(鄕約契)·보약사(保約社)·포수단(砲守團) 등 의병계열 인사 560명 등이 기존의 단체를 해산한 후 대한독립단을 창설하였다. 대한독립단을 구성한 대부분의 세력인 의병들 가운데 평안도, 황해도 출신의 유학자들이 다수였다. 그래서 대한독립단은 대한제국의 재건을 주장하는 복벽주의(復辟主義) 성향을 띄었다. 대한독립단의 전략과 전술이 담겨 있는 「대한독립단통칙(大韓獨立團通則)」에 나타난 최종 목적은 “남부 만주와 조선내지에 기맥을 상통하여 조선독립의 완전한 성취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군자금 모집·독립군 양성·무장투쟁과 반역분자 처단·대한독립단 기관 설치 등을 활동 방향으로 잡았다. 대한독립단의 조직은 도총재부(都總裁部)·총단(總團)·지단(支團)·남만주제1사단(南滿洲第)1(師團)으로 이루어졌고, 총단 휘하에 군사부(軍事部)·서무부(庶務部)·고문(顧問)·서기장(書記長) 등을 두었다. 대한독립단은 국내외에 지단을 설치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다. 만주의 류허현·환런현(桓仁縣)·창바이현(長白縣)·푸쑹현(撫松縣)·린장현(臨江縣)·콴뎬현(寬甸縣)·지안현(集安縣)·싱징현(興京縣)·퉁화현(通化縣) 등에 지단이 설치되었으며,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특히 무장투쟁을 위한 군자금 모집이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각 지단에 재무감을 두어 군자금을 징수하였지만,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대부분이 빈농이라 군자금 모집은 여의치 않았다. 이러한 점과 국내 세력과의 연계를 위해서 국내 지단 확장에도 힘을 쏟아 평안도와 황해도 등지에 다수의 지단이 집중적으로 설립되었다. 대한독립단은 단원들을 2차례에 걸쳐 국내에 잠입시켜 지단 확장을 시도하였다. 1919년 늦가을 국내에 잠입한 단원 김봉규(金琫奎)·박승혁(朴承赫)·이원보(李元甫)는 맹산군(孟山郡)과 덕천군 두 지역의 경계선에 있는 선유봉(仙遊峰)의 맹산범골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각각 총무·조직·행동책으로 임무를 분담하여 지단 조직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1920년 4월경 덕천군내 저명 유림들을 중심으로 덕천지단이 결성되었다. 1920년 9월 재무감인 정붕익(丁鵬翼)의 집에서 정진원(丁進源)·박승혁의 권고로 대한독립단 덕천지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부지단장을 맡아 지단장 이윤실(李潤實), 재무감 정붕익·총무 정진원·서기장 김승문(金勝文)·통신부장 서상억(徐尙億) 등과 함께 지도부로 활동하였다. 이후 군자금 모집에 적극 동참하였고, 정붕익의 집에서 이태원(李泰元)으로부터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는 등 항일활동을 펼쳤다. 그러다가 1921년 6월 14일 덕천지단 단원들과 함께 덕천경찰서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21년 10월 2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2년 2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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