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在喆
鄭在喆1921. 9. 28 ~ 1993. 12.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921년 9월 28일 경기도 인천부(仁川府) 목월정(木越町, 현 간석동)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는 1922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 말기에는 강제에 의해 하야재철(河野在喆)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1940년 항일결사단체인 대한독립당[조선독립당(朝鮮獨立黨)]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제공하였다. 1939년 부천공립보통학교(富川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잠시 농사를 짓다가, 같은 해 11월부터 인천 소화정(昭和町, 현 부평동)에 위치한 홍중상공주식회사(弘中商工株式會社)의 부평공장 직공으로 근무하였다. 1940년 봄부터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윤석균(尹錫均)을 알게 되었고, 그해 12월 4~5일경 윤석균을 통해 대한독립당을 소개받고 이 단체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조선독립을 위한 자금 제공에 동의하면서 홍중상공주식회사에서 조선독립당원 장례비로 15원을 제공하였다. 같은 달 15일 경에는 목월정에서 당 본부에 보낼 윤석균의 여비 15원을 제공하였다. 1941년 5월 경부터 그 해 9월 말까지 총 15차례에 걸쳐 목월정과 기타 인천부 내에서 매달 당 본부에서 세 차례씩 거행하는 대안제(大安祭) 비용으로 1회당 10원씩 도합 150원을 전달하였다. 같은 해 7월 15일 경에는 목월정 부근 밭에서 당원의 장례비용으로 25원을 전달하였고, 27일에는 윤석균의 집 근처 도로에서 당원의 위령제 비용 15원을 전달하였다. 8월 3일 경에는 같은 곳에서 당 본부의 검술(劍術) 지도관으로 임명되어 그 취임식 비용으로 25원을 제공하였다. 10월 2일에는 자택에서 당원의 위령제 비용으로 25원을 제공하였으며, 11월 5일 경에는 인천항 역전(驛前)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당원의 무사를 축하하는 연회비용으로 200원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조선독립당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제공한 비용은 총 520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노출되어 용산경찰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42년 10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같은 해 12월 15일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었고, 1943년 9월 25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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