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鄭海哲

鄭海哲

1907. 4. 15 ~ 1937. 12. 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海哲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금산(錦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금산청년동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전북공산당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907년 4월 15일 전라북도(현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 금산면(錦山面) 중도리(中島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해윤(鄭海潤)이다. 금산공립보통학교와 전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9월부터 6개월 동안 금산군 농회의 기술자로 근무하였다. 1928년 초 금산청년동맹(錦山靑年同盟)에 가입하였으며, 연락조직원·서무재무부장·집행위원장 대리 등으로 활동하였다. 동시에 금산청년동맹과 연관이 있는 신흥학원(新興學院)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던 중 1929년 3월 29일 전북공산당사건(全北共産黨事件)에 연루되어 경기도경찰부에 붙잡혔다. 1년여 동안 옥고를 겪다가 1930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 면소(免訴) 결정을 받았다. 풀려난 후 조선일보 금산지국 기자 길경섭(吉慶燮)과 만나 부진 상태에 빠져있는 금산청년동맹을 부흥시킬 것을 협의하였다. 그 일환으로 1931년 6월 30일 동맹회관에서 서면대회(書面大會)를 개최하고 각 부서 부장들을 새로 선출하였다. 이때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또한 조선일보 금산지국에서 길경섭·정국래(鄭國來) 등의 기자들을 만나 금산청년동맹 부흥운동에 신문을 이용한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를 위해 신문에서 금산청년동맹의 활동 상황을 상세히 보도함으로써 지방민들의 신뢰를 얻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1931년 8월 22일에는 길경섭이 경영하는 금산읍 부리주(富利酒) 판매점에서 김현룡·정국래·송명수 외 여러 명의 금산공립학교 동창들과 만나 일본어 사용금지를 주장하다가 붙잡혔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11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