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文煥
曺文煥1907. 11. 24 ~ 1949. 10.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목포노동소년회
- · 조선소년연합회
- · 목포청년동맹
- · 고려공산청년회
- · 신간회 목포지회
- · 전남소년연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907년 11월 24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岩郡) 영암면(靈岩面) 교동(校洞)에서 태어났다. 조선일보사 목포지국(木浦支局) 기자로 근무하던 1926년 4월 25일 목포노동소년회 창립을 발기하였다. 소년운동의 통일을 목적으로 1927년 7월 30일 서울 시천교당(侍天敎堂)에서 4개 연합과 68개 소년단체, 대의원 6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조선소년연합회(朝鮮少年聯合會) 발기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창립준비위원으로 참가하였다. 또한 그해 10월 16일 천도교기념관에서 52단체, 96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된 조선소년연합회 창립대회의 창립준비위원(목포)으로 선전부를 맡았다. 1927년 10월 3일 목포청년동맹 창립대회에서 상무서기(常務書記)로 선임되었고, 11월 29일 목포청년동맹 제2회 집행위원회에서 전남청년연맹 임시대회 출석대의원으로 선정되었다. 민족통일전선체인 신간회운동에도 힘을 쏟아 1927년 12월 4일 신간회 목포지회 간사로 선임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고 있던 1928년 8월 5일 전남소년연맹 창립총회를 일제가 금지하자 전남 각 지방의 소년운동 대표자 40여 명이 무등산(無等山) 증심사(澄心寺)에서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일제 경찰의 급습으로 모두가 체포되었는데 당시 신병으로 조은여관(朝殷旅館)에 머물면서 증심사에서 개최된 ‘간담회’에 가지 않았지만 붙잡혔다가 그 날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한편 1927년 8월 목포부내 남(南) 음식점에서 김재명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목포야체이카 소속으로 활동하였는데, 이 일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혀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1년 8월 10일 만기 풀려났다. 1935년 5월 17일 동아일보사 영암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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