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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在萬

鄭在萬

1900. 2. 22 ~ 1935.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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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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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원(平原)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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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2) 1900년 2월 22일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해소면(海蘇面) 난산리(蘭山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뒤에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는데, 대한독립단은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유림 및 의병계열을 중심으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로, 복벽주의(復辟主義)를 표방하였다. 도총재(都總裁)와 총단(總團)을 두었고, 중앙본부와 지방 지부를 나누어 서간도 지역 9개현에 지단(支團)을 조직하였다. 또한 평안도·황해도 등지에 80여 개의 지단을 설치함으로써 국내 인사들과 연합하여 단원 확보 및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이 때 1919년 10월 만주 펑톈성(奉天省) 환런현(桓仁縣) 구자하자(狗子河子)로 이주하였고,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한편 1920년 9월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불령선인초토계획(不逞鮮人焦土計劃)으로 인한 경신참변(庚申慘變)으로 간도 지역에서의 독립군의 거점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후 1922년 봄 만주 펑톈성 환런현에서 열린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에서는, 남만주의 독립군단들 중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비롯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광한단(光韓團), 한교민단(韓僑民團), 평북독판부(平北督辦部),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등 대표자들이 모여 각 조직을 통합한 형태의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조직하였다. 이어서 1922년 8월, 8단 9회의 대표자 71명은 환런현 마권자(馬圈子)에서 남만한족통일회의(南滿韓族統一會議)를 개최하여, 대한통군부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로 확대·개편하였다. 대한통의부는 군사활동과 교민의 자치행정을 겸임하는 조직으로, 일종의 군정부(軍政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민사·교섭·군사·재무·학무·법무·참모·교통·실업 등 9개 행정부서를 두었으며, 의용군(義勇軍)이라는 이름의 군대를 보유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1922년 (음)2월, 만주 펑톈성 퉁화현(通化縣)에서 대한통의부 조직이 생겨날 때 이에 참여하였고, 민사부장(民事部長) 이웅해(李雄海) 휘하에서 민사부원으로 활약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봄 환서(桓西) 제8구(區) 백가장(百家長)으로 선임되었고, 1925년 8월 참의부(參議府) 제3중대 경리(經理) 유광헐(劉光歇)과 함께 펑톈선 환런현 사강구(沙崗溝)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만주 펑톈성 싱런현(興仁縣) 제8구(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1927년 11월 26일 펑톈성 내 일제 관헌에게 붙잡혀서 12월 5일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927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고, 1928년 12월 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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