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昌德
鄭昌德미상 ~ 1921. 6. 17
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나 출신지역은 알 수 없다. 중국 만주로 이주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같은 해 서간도에서는 통일적인 독립운동기구를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는 독립운동의 효율적인 전개를 위해서였다. 그해 4월초 각 현의 지도자들이 유하현 삼원보(三源堡)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남만주 일대 독립운동을 위한 총 본영으로 군정부를 구성하고, 거류민의 자치 기구로 한족회(韓族會)를 조직한다는 사항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재하게 되면서 군정부와 한족회의 위상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만주에 군정부가 있게 될 경우 대내외적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불신감을 가져올 염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제 외교상 임시정부를 상하이에 두고 군사기관은 만주에 둔다는 사상을 협의한다는 사항이 결정되었다. 1919년 11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성립되고 새 각원들이 취임하게 되면서 군정부는 임시정부 관할 아래에 있는 서간도 지구 군사기구인 서로군정서로 개편되게 되었다. 이때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의용군(義勇軍) 벽동군서(碧潼郡署)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의용군은 서로군정서의 군부대로 총 5개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국내진공작전, 친일파 및 밀정의 제거가 주된 업무였다. 벽동군서는 중국 콴톈현(寬甸縣) 대류하(大流河)에 위치해 있었고, 압록강에서 4리(약 1.6Km) 정도 되는 거리였다. 1921년 6월 17일 일제 경찰이 벽동군서를 습격하였다. 이때 강력하게 일제 경찰에게 저항하였으나 임경식(林璟植)·이춘명(李春明)·최난기(崔鸞基)·이덕룡(李德龍)·진치선(陳致善)·임종호(林宗浩)·박양호(朴良浩)·이인화(李仁和)·김대석(金大石)·김병택(金秉澤) 등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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