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達元
趙達元1902 ~ 1920. 10. 22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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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에 따르면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출신지는 알 수 없다.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만주 지린성 옌지현(延吉縣), 허룽현(和龍縣), 왕칭현(汪淸縣), 훈춘현(琿春縣) 지역에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해 정착하였고, 경술국치 이후에는 이 지역에 다수의 한국인 학교가 세워져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민족교육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한편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역에도 항일운동 단체의 독립운동과 무장투쟁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0년 6월 봉오동(鳳梧洞) 전투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격파하자, 일제는 이 지역에 대한 토벌작전을 세우고, 더불어 1920년 8월 부임한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의 지휘로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작성하였다. 10월 2일 일제에게 매수된 중국 마적단이 일본 영사관 및 일본군 거류지를 습격하는 훈춘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를 계기로 1920년 10월 7일, 일본 내각은 해당 지역에 파병을 결정하였고, 10월 9일 일본 육군은 조선주둔일본군에게 북간도에 거주하는 “불령선인 및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10월 2일부터 1921년 5월까지,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국인을 학살하였다. 특히 이들은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에 이르는 ‘제1기토벌’의 기간 동안 온갖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는데, 이 사건을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또한 간도 지역의 가옥 및 학교·교회 시설도 이 때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독립신문』에서 추산한 통계에 따르면, 경신참변으로 사망한 조선인 수만 3,664명이며, 재산피해는 민가 3,520동, 학교 59개교, 교회당 19개소, 곡물 59,970섬에 이른다. 이 때에 만주 지린성 옌지현에서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 독립군의 정보 연락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10월 22일 지린성 훈춘현 십리평(十里坪)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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