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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東植

趙東植

미상 ~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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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東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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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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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제국 육군 기병대
  • · 대한정의군정사
  • · 광복단
  • · 대한독립군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자유시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서울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명은 조인흥(趙仁興)이다. 대한제국 육군 기병대 출신이며, 1919년 만세운동 전후 중국 북간도 지역으로 망명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안투현(安圖縣) 내도산(內島山)에 정착한 후 이규(李圭)·강희(姜熹)·이동주(李東柱) 등을 비롯한 대한제국 군인 출신자들 및 의병들과 함께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 임시군정부(臨時軍政府)를 조직하였다. 그해 9월경 최재용(崔載容)·주창화(朱昌化)·강희·박성호(朴成浩)·방도순(方道順)·박윤희(朴允熙)·엄홍구(嚴弘龜)·김병호(金秉浩)·목근혁(木根革)·석광옥(石光玉)·김낙구(金洛龜)·강호연(姜浩然)·길성익(吉星翼)·김성인(金姓人) 등과 함께 군자금과 군수품 등을 모금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0월 23일 상하이(上海)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권고로 대한정의단 임시군정부의 명칭이 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로 개칭되고 체계적으로 조직이 개편되었다. 이때 교련과장 및 제1중대장을 맡고 군인의 교련을 담당하였으며, 일본군과도 교전하였다.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황용기(黃龍起)·이규철(李揆哲) 등이 이끄는 동맹결사대(同盟決死隊) 등과 연락을 취하였고, 함남 갑산(甲山)·삼수(三水)지방 및 함북 무산(茂山) 지역에 있던 일본군 헌병대, 일제 경찰 관서 및 관청을 습격하였다. 대한정의군정사 소속 부대의 중대장으로 뛰어난 전략을 발휘하여 명성이 북간도 일대에 있던 독립군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다. 1920년 광복단(光復團) 제8중대장으로서 부대를 이끌고 백두산 부근에서 주둔하면서 일제 군경과 교전을 준비하였다. 그해 10월경 북간도 지역 독립운동 단체에 속해있던 독립군은 약 2,000명이었다. 이들은 대규모 일본군에 맞서서 싸웠으며, 청산리(靑山里)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북간도 지역의 독립군 부대를 이끄는 전략가로 역시 독립군을 이끌고 항일전쟁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 12월 독립군 단체들은 밀산(密山)에서 체제를 정비하고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였다. 이때 오광선(吳光善) 등과 함께 대한독립군단의 중대장을 맡았다. 이후 독립군과 함께 러시아 아무르주에 위치한 자유시(自由市)로 들어갔다. 당시 자유시에 조직되어 있었던 한국인 부대인 자유대대와 극동공화국의 후원으로 한국인 무장부대들은 전한군사위원회(全韓軍事委員會)를 조직하였으며, 대한의용군(大韓義勇軍)을 결성하였다. 하지만 한국인 무장부대의 주도권 및 코민테른과 극동공화국의 일관되지 않은 태도가 문제가 되어 한국인 부대 간에 전투가 벌어진 ‘자유시참변(自由市事變)’이 발생하였다. 자유시참변 당시 생존하였으나, 1922년 이르크츠크에 거주하던 중 신경쇠약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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