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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根洙

根洙

1859. 6. 5 ~ 1907.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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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根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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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고종의 강제퇴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59년 6월 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안성읍(安城邑) 구포동(九苞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자료의 한계로 집안 내력, 성장 과정 등은 알 수 없다. 안성군에서 작성한 「순국충령록(殉國忠靈錄)」에는 독립협회(獨立協會)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1907년 7월 네덜란드에 있는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가 개최되자, 고종(高宗)은 정사(正使)로 전(前) 의정부(議政府) 참찬(參贊) 이상설(李相卨), 부사(副使)로 전 평리원(平理院) 검사(檢事) 이준(李儁)과 주러한국공사관(駐露韓國公使館) 참서관(參書官) 이위종(李瑋鍾) 등 3인의 밀사를 파견하였다. 일제에 의해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불법성을 세계 만방에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하기 위한 외교활동의 일환이었다. 이 일을 구실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는 일본에게 헤이그 밀사 파견에 대하여 사과해야 한다고 고종의 일본행을 요청하였다. 고종이 일본으로 사과하러 가게 되었다는 신문보도를 읽고 크게 분개하였으며, 이에 당시 안성청년회(安城靑年會) 회장 강태영(姜泰榮), 김명기(金明起) 등의 동지들과 함께 결사대(決死隊)를 조직하고 민중을 규합하여 일진회 안성사무소를 습격·파괴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민중들을 이끌고 평택역(平澤驛)으로 가서 고종이 승차한 열차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저지할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에 당시 수원(水原)에 주둔하던 일본헌병대가 안성으로 와서 군중을 해산시키고 주도자를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강태영·김명기와 함께 주도자로 붙잡혔고, 3인 모두 1907년 (음)7월 24일 수원 서문(西門) 밖에서 일제에 의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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