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希淳
鄭希淳1883. 3. 20 ~ 1911. 10.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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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1) 1883년 3월 20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덕언면(德彦面) 대산리(大山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호은(湖隱)이다.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이승훈(李昇薰)의 권고로 신흥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07년 4월 국권회복을 위해 비밀리에 조직된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평북지회에서 활동하였다. 평북 조직은 평남에 비해 범위도 넓고 회원도 많았다. 선천(宣川) 신성학교와 정주 오산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물론 의주(義州)·곽산(郭山)·용천(龍川) 일대까지 그 조직이 뻗쳐 있었다. 1910년 12월 일제는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암살미수 사건을 조작하였다. 안중근(安重根)의 사촌인 안명근(安明根)이 무관학교 설립을 위한 자금을 모으다가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자, 안악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160여 명을 검거하여 18명을 이른바 내란미수와 모살미수 등으로 기소하였다. 이것을 이른바 안악사건이라 한다. 1911년 1월 일제는 독립군기지 건설을 추진하였다는 이유로 양기탁(梁起鐸)·임치정(林蚩正)·주진수(朱鎭洙) 등 16명을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하였다. 그해 9월 관서(關西) 지역에서 활약하던 유동열(柳東說)·윤치호(尹致昊)·이승훈(李昇薰)·이동휘(李東輝) 등 60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이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힌 후. 혹독한 고문으로 1911년 10월 30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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