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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魯成

成

1859. 5. 14 ~ 1919.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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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魯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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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和順)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양회일 의병부대(쌍산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양회일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59년 5월 14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청풍면(淸豊面) 옥리(玉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임춘봉(林春逢)과 임노준(林魯準)이다. 1907년 양회일(梁會一)이 이끄는 쌍산의진(雙山義陳)에서 우포장(右砲將)으로 활동하였다. 전남 능주(綾州) 출신인 양회일은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일찍부터 시문에 뛰어나고 충성심이 두터워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었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1907년 임창모(林昌模)·양열묵(梁烈默) 등과 함께 화순군 이양면(梨陽面) 증리(甑里)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같은 해 1월 19일 “군부(君父)가 훼손을 당하고 국모가 화를 입으면 인신(人臣)된 자는 마땅히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병자통상(丙子通商) 이후 갑오년과 을미년의 멸의(滅義)와 비통을 당했으며 을사년의 변괴로 5백년의 사직과 3천리 강토가 다 무너졌다.”라는 내용의 격고문(檄告文)을 발표하면서 의병봉기의 당위성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면서 “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조병세(趙秉世)·민영환(閔泳煥) 등의 원로들이 순국했으니 우리 모두 일어나서 왜를 물리치고 역신들을 응징하기 위해 3월 상순에 쌍산의진에 참여하라”고 역설하였다. 1907년 3월 양회일을 대장으로 추대하면서 쌍산의진이 조직될 때, 당질(堂姪)인 임상영(林相永)과 함께 참여해 우포장(右砲將)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부장 신재의(辛在義), 선봉장 이광선(李光善), 중군장 임창모(林昌模), 후군장 노응현(盧應玄), 도포장 유화국(柳化國), 총무 양열묵(梁烈黙), 호군장(護軍將) 임노복(林魯福), 서기 이병화(李秉華), 참모 임상영, 군의(軍醫) 전신묵(全信黙) 등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의병부대의 병력은 약 200명에 달하였다. 같은 해 (음)3월 9일 이들과 더불어 능주의 관아와 일제 헌병분견소 등을 습격해 무기와 총탄을 확보하였다. (음)3월 10일에는 화순군의 군아와 헌병분견소를 습격하고 전신주와 전선을 잘랐다. 이어서 동복면(同福面)을 거쳐 광주(光州)로 진격하기 위해 도매치(都埋峙)를 지나다가 일본군의 기습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양회일 등을 포함한 상당수의 참모진이 붙잡히면서 의병부대도 흩어지게 되었다. 한편 전투과정에서 당질인 임상영이 죽자 분노해 일본군에게 달려들다가 전사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의병부대 해산 이후 은거하다가 1919년 7월 2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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