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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준

張基俊

186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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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기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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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경흥(慶興)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최재형 의병부대
  • · 동의회
  • · 국민회 연추지방지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최재형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함경북도 경흥군(慶興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67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4월 최재형(崔在亨)·엄인섭(嚴仁燮) 등이 조직한 동의회(同義會)에서 들어가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고, 연추(煙秋) 인근 합십마구(哈十螞溝)에서도 부하들을 이끌고 항일활동을 펼쳤다. 1907년 이후 해산군인 다수가 러시아의 연추 일대로도 망명하였다. 이때 간도에서 의병 사포대(射砲隊)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의병장 이범윤(李範允)은 연추의 최재형(崔在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의병부대를 정비하였다. 1908년 이후 이범윤은 이위종(李瑋鍾)이 가져온 자금을 바탕으로 창의회를 조직하였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인석과 회합하고, 항일투쟁에서 서로 협력할 것임을 결의하였다. 그 결과 같은 해 7월 최재형은 정예부대 200명을 꾸려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경원(慶源)의 신아산(新阿山)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회령(會寧)의 영산(永山)에서도 일본군과 접전하며 큰 전과를 올렸다. 일찍이 러시아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최재형·이범윤과 함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이후 지속적으로 의병활동을 펼쳤고, 1910년 3월까지 두만강 대안(對岸)에 머물면서 국내로 들어올 틈을 노렸다. 최재형은 의병들의 자금줄이 되어 의병부대를 편성하였고, 홍범도(洪範圖)를 지휘관으로 하는 국내진공을 추진하였다. 연추에서 가까운 중국 만주와의 경계령에 위치한 합십마구에서 40여 명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를 꾸려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홍범도 등과 더불어 연추·오가자(五家子)·훈춘(琿春) 등을 왕래하면서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1918년에는 국민회(國民會) 연추지방지부(煙秋地方支部) 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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