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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수

張南守

미상 ~ 1908.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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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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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김성운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김성운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출생시기와 출신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없다. 1908년 김성운(金成雲) 의병부대에서 부장(副將)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김성운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직후 경북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활동한 의병장이다. 1908년 김성운은 신돌석(申乭石)·유시연(柳時淵) 의병부대와 연합작전을 펼치며, 경북 영양(英陽)·안동(安東)·예천(醴泉)·영주(榮州)·울진(蔚珍)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김성운 의병부대에 합류한 후 부장으로 임명되었고, 30여 명을 독자적으로 인솔해 활동하기도 하였다. 1908년 김성운 의병장의 가족이 거처하고 있던 영양군(英陽郡) 수비면(首比面) 신지(信地) 무곡(無谷)에 잠시 은신하였다. 이곳은 깊은 산 중의 한적한 마을로 겨울 내내 눈이 쌓여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같은 해 2월 중순경 의병장 김성운이 자택을 떠나 수비면 송방(松方)으로 이동하였고, 의병부대의 부장으로 남아 있던 동료 36명을 지휘하였다. 같은 해 2월 19일 장문실(張文實) 의병부대의 수 명과 함께 무곡에 주둔하고 있다가, 영천경찰분서(榮川警察分署) 나카지마(中島) 종대(縱隊)의 습격을 받았다. 그리고 일제 경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지만, 동료 10명이 전사하고 2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이때 동료 24~25명은 북방 고지를 넘어 박곡(朴谷)으로 후퇴하였으나, 일제 경찰에게 추가로 7명이 희생되었다. 이날 벌어진 전투에서 동료들을 지휘하며 분전(奮戰)하였지만,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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