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언
張明彦1885 ~ 1908. 5.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경남 합천
- · 산청)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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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4) 경상남도 삼가군(三嘉郡) 감한면(甘閑面) 외사리(外沙里, 현 합천군 가회면 외사리)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경남 합천군(陜川郡)과 산청군(山淸郡)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며,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 당하는 등 국권상실이 현실화되자 전국에서 항일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해 갔다. 이러한 가운데 호남과 인접한 서부 영남 지역은, 을미의병 이래 호좌의진(湖左義陣)과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연대 등 의진 간의 연합을 기반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던 곳이었다. 1908년 초 같이 삼가군에 거주하던 이차봉(李且奉)·이소봉(李小奉)·김화숙(金華淑)·김찬숙(金贊淑)·한치문(韓致文)·김우옥(金羽玉)·김응오(金應五) 등 10여 명과 함께 의진을 조직하여 삼가군·합천군·단성군(丹城郡)·산청군 등 주변일대를 돌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곧 1908년 4월부터 5월까지 삼가군 대평면(大平面)·합천군·삼가군 문송면(文松面)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산청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주재소 건물을 불태우고 군수품을 노획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08년 5월 12일에 삼가군 감한면(甘閑面)에서 삼가주재소 일본인 순사들에게 이소봉·김화숙 등 동료 의병 5명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 군경은 잔여 의병들을 체포하고자 5월 18일 삼가군 고현면(古縣面)으로 이들을 데리고 출동하였다. 이에 이들을 구하려는 동료 의병들이 일제 군경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여 포로 의병 전원이 살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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