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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환

張益煥

1866 ~ 1937.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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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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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단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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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유인석 의병부대
  • · 원용팔
  • · 정운경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매포면(梅浦面) 상진리(上津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66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는 수겸(受謙)이고 호는 중재(中齋)이다. 인동(仁同) 장씨 동정공파(同正公派) 14대손으로 아버지는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湖左義陣)에서 활동했던 장충식(張忠植)이다. 6대 조부 장시보(張時輔) 이후 소종가집으로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재지 사족이었다. 부친 장충식은 과거 급제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문재(文才)가 있어 이름난 선비들과 교류하였고, 민겸호(閔謙鎬)의 문객으로 있다가 임오군란 당시 민겸호의 장례를 주관하였다. 이후 1886년 선공감(繕工監) 가감역(假監役), 1888년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등을 역임하였다. 보수적인 정치 지향을 가진 아버지의 영향으로 화서학파의 계보를 이은 인물 중 하나인 유중교(柳重敎)의 제자 이근원(李根元)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배웠다. 그러던 중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민씨 척족과 인연이 있었던 부친 장충식이 같은 해 12월 4일 봉기를 촉구하는 격문을 지어 돌리며 의병 거의를 준비할 때, 동생 장진환(張晋煥)과 함께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튿날 마침 유중교의 문인인 이필희(李弼熙)가 원주(原州)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제천(堤川)을 거쳐 단양으로 진군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아버지와 함께 합류하면서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필희 의병부대는 대개 유중교의 젊은 문인들이 지도부를 이루고 있었는데, 연로한 장충식이 참모로 종군하며 부대를 지원하자, 아버지를 도와 보필하며 종군하였다. 이후 유중교의 학통을 계승한 유인석이 의병장으로 추대된 후 제천지역을 근거지로 의병부대를 결성하자, 부친 장충식과 함께 합류하였다. 이때 장충식은 의병장 참모를 겸하면서 사객(司客)으로 임명되었다. 사객은 의병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찾아오는 선비들을 맞이하는 직책으로, 의병활동의 외연을 확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이었다. 아버지의 사객 임무 수행을 보좌하면서 동시에 단양을 파수(把守)하라는 명을 받고, 단양 지역을 지키면서 군사와 군자금 모집에도 힘썼다. 이후 유인석 의병부대가 충주성을 점령하는 등 한때 기세를 올렸으나 관군의 반격으로 다시 제천으로 밀려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어서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친일 내각이 붕괴되고 단발령의 강제가 사실상 철폐됨에 따라 의병부대도 앞으로의 행동 노선을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되었다. 1896년 3월 13일 부친 장충식은 단발령보다 국모 시해를 앞선 명분으로 내걸 것, 팔도의 의병 대오를 통일시키기 위해 퇴임한 재상 중 명망 있는 자를 추대할 것, 친소귀천을 따지지 말고 인재를 등용할 것, 제천에만 머물지 말고 서쪽으로 나가서 돌파구를 찾을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10개항의 건의문을 제시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같은 해 5월 제천마저 관군에게 빼앗기고 의병부대가 해산하면서 유인석 등 지도부가 중국으로 망명할 때, 함께 동행하지 않고 아버지와 같이 남아 은신하며 지냈다. 1901년 부친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는 등 개인적인 아픔을 겪는 와중에서도 다시 의병활동을 재개할 기회를 기다렸다. 1905년 8월 유인석 의병부대에 함께 참여했던 원용팔(元容八)이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합류하였고, 좌군장으로 선임되어 함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원용팔이 체포된 후에는 정운경(鄭雲慶)·이강년(李康秊) 등 유중교-유인석 문인 출신의 의병장들을 지원하며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이강년 의병장마저 사망한 후에는 고향에 은둔하며 강학과 저술활동에 힘썼다. 저서로는 의병항쟁 당시 활동을 기록한 『일기』와 부친의 행적을 기록한 『수문록(隨聞錄)』 등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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