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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麟瑞

張瑞

1884 ~ 190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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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張麟瑞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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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윤동섭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자료에 따르면 1884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또한 윤동섭(尹東燮) 의병부대에 들어가기 전의 행적과 직업 역시 명확하지 않다. 윤동섭 휘하의 의병장으로서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후 1907년 7월 31일 대한제국의 군대마저 해산되자, 많은 군인들이 무장해제와 해산을 거부하고 봉기하거나 혹은 지방으로 이동해 의병부대에 합류하거나 주도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개성진위대 출신 군인이었던 윤동섭도 1908년 4월 거병하고 다수의 포수들이 거주하는 낭림산맥 일대로 이동하였고, 150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문천군(文川郡)·고원군(高原郡), 평안남도 양덕군(陽德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윤동섭 휘하의 의병장으로서 함남 고원군과 평안남도 영흥군 일대를 활동지로 삼았다. 특히 고원군에서도 험지가 많은 수동면(水洞面)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부대규모는 해당 산간지역에 상당하였던 포수(砲手)들을 중심으로 50~80여 명의 규모로 추정되며, 화승총(火繩銃)을 주요한 무기로 휴대하였다. 의병부대는 1908년 3월 중순~하순경 고원군 소산면(蘇山面) 효초리(效草里), 수동면(水洞面) 미둔리(弥屯里) 일대에서 일진회(一進會) 회원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1908년 3월 25일 오전 3시 30분 윤동섭 의병부대가 고원군 고원읍(高原邑)의 순사주재소를 2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습격한 작전에도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4월경에는 고원군 수동면 인흥리(仁興里)와 동면 천성리(泉城里)에서 일진회 회원들의 집을 파괴하고, 회원 2명을 처단하였다. 그러나 1908년 4월 18일 고원군 수동면에서 일본군 수비대 및 경찰대와의 교전 중에 총격을 당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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