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초
張仁初1877 ~ 1910. 9.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안규홍 의병부대
- · 심남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0) 전라남도 능주군(綾州郡, 현 화순군) 한천면(寒泉面) 어대동(於待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재판 당시 34세로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장윤초(張允初)·장인상(張仁尙)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집안 배경 및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와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안규홍 의병장은 전남 보성군 태생의 의병장으로 안규태(安圭泰)·안계홍(安桂洪)·안진사(安進士) 등 여러 이명을 가졌으며, 머슴 출신이라 ‘안담살이’로 불리기도 하였다. 안규홍은 1908년 2월 강성인(姜性仁)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생활을 시작하였다가 강성인이 의병 활동을 빌미로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자 강성인을 처단하고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전남 보성 일대를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던 전남 지역의 대표적인 평민 의병장이다. 1909년 (음)1월 20일 안규홍 의병부대에 합류하였으며, 이후 의병부대의 선봉장이 되어 안규홍 휘하에서 총으로 무장한 동료 의병 80~90여 명과 함께 전남 보성 일대에서 군수품을 모집하거나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3월 6일 일진회 회원 박봉조(朴鳳朝)를 처단하라는 안규홍의 명에 응하여 임하중(林夏仲)·염인서(廉仁瑞)·염군명(廉君明) 등 동료들과 함께 전남 보성군 봉동(鳳洞)에 있는 박봉조의 집을 급습하여 박봉조를 붙잡아서 처단하였다. 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보성군 도촌면(道村面) 개산리(開山里)에 사는 구자욱(具子旭)으로부터 총 1정을 모집하였으며, 보성군 노동면(蘆洞面) 광탄리(廣灘里)에 거주하는 선영수(宣永洙)로부터도 마찬가지로 총 1정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이후 정확한 시점과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안규홍 의병부대에서 나와 1909년 5월 25일에 심남일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심남일은 전남 함평군(咸平郡) 출신의 의병장으로 심수택(沈守澤·沈秀澤)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렸으며, 한때 최대 700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전남 남평(南平)·영암(靈岩)·보성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심남일 의병부대에서도 선봉장의 직을 수행하였으며 심남일과 동료 의병 100여 명과 함께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심남일 의병부대는 일본군의 압박에 대응하여 1909년 7월경 부대를 소규모로 분산하였는데, 이때 분산된 소규모 부대 중 하나를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 경찰부의 1909년 10월 상황 보고에 따르면, 심남일이 10월 9일 일본군에 체포되어 의병부대가 완전히 와해된 이후에도 소규모 부하들을 이끌고 항쟁을 지속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활동 중 붙잡혀서 1910년 6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20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으며, 그해 9월 15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1910년 9월 30일 심남일과 함께 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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