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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모

張載模

1883. 11. 7 ~ 194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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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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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順天)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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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안규홍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3년 11월 7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송광면(松光面) 신평리(新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성수(張聖樹)이다. 출신은 명확하지 않으나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 가담할 당시, 고용살이를 하던 안규홍의 신분을 천하게 여겨 거병 초기에 양반들이 협조하지 않았던 상황과 『담산실기(澹山實記)』에 기록된 “호미나 괭이·나무작대기를 가진 자”들이 참여했을 뿐이라는 서술, “우리는 본디 농촌의 백성으로서”라는 부대장 염재보(廉在輔)의 발언 등으로 볼 때 역시 적어도 양반은 아니었거나 혹은 안규홍과 마찬가지로 농민 혹은 하층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규홍 의병부대 초기의 참여자로서 부장(副將)의 직책을 맡아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에 이어 1907년에는 경찰권 등을 박탈당하다가 군대까지 해산되는 지경이 되어 일제의 침략 의도가 노골화되자 전국적인 독립항쟁의 의지가 점화되었고, 또한 군대 해산은 이들을 양질적으로 강화해 줄 수 있는 여건으로 기능하였다. 이에 고용인 신분이었던 안규홍은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걱정하여 당시 순천군 일대까지 내려와 있던 강원도 출신 의병장 강성인(姜性仁)과 무장한 의병 수십 명이 합류함으로써 1908년 1월경 전남 보성군(寶城郡) 동소산(桐巢山)에서 거병하였다. 이 때 안규홍은 순천군과 흥양군(興陽郡)의 시장을 돌며 장터의 상인·일반인들에게 의병에 가담하기를 요청하여 100여 명의 부하를 모았다. 이 과정에서 순천 출신 거주자로서 안규홍에게 설득되어 의병부대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임병국(任秉國)·정기찬(鄭基贊)·송경회(宋敬會) 등과 함께 좌우익부장(左右翼副將)에 임명되었다. 이후 안규홍 의병부대는 같은 해 4월경 오주일(吳周一)을 비롯한 서울에서 내려온 직업 군인들을 규합하여 전력을 강화하고, 전남 순천군·흥양군·보성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안규홍 의병부대는 1908년 2월경 보성군 파청(巴靑)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적의 장교급을 전사시켰으며, 이후 진산(眞山)·원봉산(圓峰山)·순천군의 병치(並峙) 전투 등에서 연이어 승전을 기록하였다. 이 과정에서 안규홍 의병부대의 좌우익부장으로서 부대를 통솔하여 크게 전공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안규홍의 의병사실을 기록한 『담산실기』에 ‘담산(澹山)의 막하 중에도 염재보·이관회(李貫會)·임창모(林昌模)·나창운(羅昌運)·송경회·장재모·손덕호(孫德浩)·정기찬 등이 가장 저명한 자이다.’라고 기록된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안규홍 의병부대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1909년경에는 임창모와 같은 양반계층이 합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어진 승리에도 불구하고 누적되는 피해는 물론 1909년 9~10월에 걸쳐 자행된 일본군의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으로 의병부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과 민간인에 대한 학살·약탈을 크게 자행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1909년 8월 29일 안규홍 의병부대는 보성군 문전면(文田面) 구피곡촌(九被谷村)에서 간부급 회의를 개최해 향후 전략을 논의하였는데, 이때 주요 의병장으로서 회의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에서 의병부대를 해산하자는 쪽과 지속적으로 투쟁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속적인 투쟁을 주장에 찬성하는 임창모 등이 이탈함으로써 의병부대는 분열되었고, 잔류파 내에서는 해산론이 우세해졌다. 이후 투항하거나 탈주자가 증가하자 안규홍은 9월 18~19일에 걸쳐 의병을 해산하였고, 임재문(任在文)·염규범(廉圭範) 등이 부하를 이끌고 투항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시 비슷한 시기에 투항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담산실기』의 「안규홍전」에서 “정기찬과 장재모는 자수하였다. [鄭張自見]”이라고 기록된 내용에서 추론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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